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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Paradox

숙성되는 한 잔의 와인처럼



제6화 숙성되는 한 잔의 와인처럼

사내 블로그를 통해 "김인범의 Sport Paradox"를 연재 중입니다

여섯 번째 글은 "숙성되는 한 잔의 와인처럼" 입니다.


20대 중, 후반에 시작되는 우리의 직장생활은 50대를 기점으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운이 안 좋다면 조금 더 이르게 마감할 수도 있고, 때를 잘 타면 좀 더 오래 그 시기를 늘려가며 생활할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어떨까요?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선수 생활은 30을 기점으로 서서히 위기가 다가오면서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선수들의 일생

학교 생활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던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은 20대 초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학창시절 대부분 운동으로만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환경은 제외)

이렇게 프로세계에 입문한 선수들은 짧게는 3~5년, 길게는 10년 정도의 전성기를 보내며 활약하고 은퇴를 맞이합니다.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코치, 감독으로서 계속 스포츠 세계에 남을 수 있지만 매우 드물고 보통은 학교나 기타 단체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일반적인 직장생활 보다는 짧고 굵게 한 사이클을 도는 스포츠 선수들의 삶은 그래서인지 보다 절박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부상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는 건 어찌 보면 고통보다는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겠죠.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선수들의 일생은 저마다의 'final shot'을 위해 오늘도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나이와 경기력의 상관 관계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선수들의 전성기는 짧으면 3년 길게는 10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성기를 좌우하는 것은 선수들의 ‘능력’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는 신체적인 성장과 그에 맞는 경기력의 조합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체적인 성장과 경기력이 알맞게 조화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25세 ~ 30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던 선수가 30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기록이 저하되고, 부상에 시달리는 것이 스포츠 계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20대 때에 비해 근력이 떨어지고 회복력이 늦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꾸준한 웨이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전문가들은 20대가 아닌 30대를 대비하여 웨이트를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꾸준한 근력의 유지가 오랜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는 많은 선수들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에이전트들과 감독들은 이러한 선수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추어 팀 구성을 하고, 매년 선수들은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나이와 경기력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최근 붉어지기 시작한 약물 복용 사건 또한 이러한 노화로 인한 경기력 저하를 막거나 늦추기 위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질병, 약물 중독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존재하고, 스포츠 기본 정신을 훼손 시킨다는 이유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사진1. MLB의 역사를 새로 썼던 Barry Bonds(煎 San Francisco)는 약물과 함께 퇴출되었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보내는 선수들

그렇다면 이러한 나이와의 편견에서 살아 남은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요?

대표적인 선수는 마리아노 리베라 선수입니다.

도미니카 태생의 리베라는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여 메이지리그 세이브기록을 경신하였으며, 현재도 경기에 나서고 있어 경기에 나설 때마다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그의 나이는 벌써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모든 팀들이 영입하고 싶어하는 클로저(구원투수)이며, 그가 원한다면 2-3년 정도 더 뛸수 있는 기량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그의 활약을 기리는 의미로 그가 방문하는 원정경기 구단에서는 그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마련하여 증정하고 있습니다.

사진 2. LA Dodgers는 리베라에게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라는 의미의 낚시대를 선물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제이미 모이어, 훌리오 프랑코 등이 40대 중후반까지 활약하다 은퇴하였고, 현재 많은 메이저리거들이 30대 후반까지 활약을 이어가는 빈도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농구의 NBA, 미식축구의 NHL도 점차 선수들의 은퇴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선수들의 근력 향상과 의학의 발전덕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베테랑을 존중하는 미국 스포츠 문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은 미국에서는 베테랑의 역할을 중시합니다.

명예의 전당을 따로 신설하여 이들의 위엄을 세워주고, 기록 여부와 관계없이 나이 든 선수의 경험을 중시하는 건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이들의 활약 덕분일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우라 선수는 1967년생, 축구선수로는 은퇴할 나이인 40대 중후반의 선수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아직 은퇴하지 않고 J리그 2부 요코하마 FC에서 공격수로 활약 중입니다. 아마 그의 선수 생활을 가로막을 건 나이가 아닌 부상이라 생각될 정도로 꾸준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진 3. 제가 축구를 처음 본 8살 때에도 그라운드를 누비던 미우라 선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선수입니다.

야구에서는 2011년 48세의 나이로 은퇴한 구도 기미야스(전 세이부) 선수가 유명합니다.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끊임없이 열정을 불태우다 해설가로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은퇴를 선언했었습니다.

일본 스포츠는 우리나라보다 전통을 더욱 중시합니다. 때문에 선배 선수들에 대한 예우를 더 철저히 지키며 이들의 도전에 대해서는 편견 없이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계약 여부에 대해 팀들이 살피는 것은 그들의 나이가 아닌 그들의 실력입니다. 팀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면 나이 여부에 관계없이 활약할 수 있는 토양이 보다 더 잘 갖춰져 있는 편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과거에는 30대만 넘어도 퇴물 취급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많은 선수들이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이며 선수들의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구 쪽에서는 이미 은퇴한 KIA의 이종범(만 42세 은퇴), 삼성의 양준혁(만 41세 은퇴), 현역 선수인 최향남(만 41세), 이병규(만 39세) 선수 등이 있고, 축구에서는 은퇴한 포항의 김기동(만 39세 은퇴), 현역 선수인 최은성 선수(만 42세) 등이 있습니다.

사진 4. 현역시절 ‘철인’ 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김기동 선수는 꾸준한 플레이로 많은 후배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많이 증가하긴 했지만, 이들 역시 선수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구단과의 마찰이 있는 편이었고, 은퇴 뒤에도 그 당시를 회상하며 아쉬움을 뱉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의 나이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으며, 이는 곧 선수생활의 연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충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스포츠의 역사가 짧아 베테랑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도 노장 선수에 대한 처우가 다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베테랑의 의미

인간 사회에서 엘리트만 필요한 것만은 아닌 것처럼 스포츠의 한 팀에서도 다양한 선수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선수, 뛰어난 능력으로 팀의 성적을 올려주는 선수, 건실한 플레이로 팀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선수... 수없이 많은 선수 유형 중 나이가 있는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는 팀이 필요한 순간에 한 방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선수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회사 생활과도 같습니다. 팀의 팀장님이나 부장님이 모든 일을 일일이 챙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서 필요한 순간에 나서주고,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평소에 그 중요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의 저력은 스포츠에서 베테랑이 차지하는 그것과도 같습니다.

야신으로 추앙받는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은 베테랑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28경기를 하는 동안 고비 때 필요한 것이 베테랑이다. 우리나라는 128게임 전부를 고참이 해주길 원하니 문제다. 1년 내내 고참의 득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그 중 30게임이 고비인데 그 고비를 넘겨내는 힘, 승부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참의 경험이다. 그 30경기, 아니 단 한 경기에도 승부처에서 잘 해준다면 그것으로 1년 연봉을 다 받아도 충분하다. 그것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경험이다.”

- 출처: [힐링인터뷰] 김성근 감독이 말하는 베테랑이 사는 법

산전 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들은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거듭된 경험으로 무장한 그들은 마치 잘 숙성된 한 잔의 와인처럼 그들의 플레이를 펼칩니다.

꼭 필요한,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젊은 선수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어찌 보면 그 짧은 한 타임이 그들의 성장을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든 자리는 알기 어려워도 난 자리는 금방 티가 납니다. 고참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참이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팀(조직)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직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우리는 고참의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그랬듯이 아무 문제도 없었기에...

많은 지식을 인터넷으로 쉽게 알게 되면서 베테랑(고참)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경쟁하고 돕고 살아가는 이 곳은 결국 인간사회이기 때문에 선배들의 경험을 무시하는 건 어찌 보면 순리를 무시하는 행위일수도 있겠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진출하여 당당하게 공을 뿌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향한 마지막 팀은 한화 이글스 였습니다. 그가 1년 동안 거둔 성적은 5승 7패였지만, 그의 경험을 많은 선수가 나누었고, 그렇게 나누었던 경험은 현재 미국에서 활약중인 류현진 선수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베테랑 선수(선배)들의 경험은 우리의 거듭되는 실수를 방지해주고 우리가 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보다 더 이들을 존중하고 활용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선 순환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Image Reference>

사진 1. 배리본즈 (http://www.philly.com/philly/blogs/trending/Somone-stole-Barry-Bonds-home-run-champion-plaque-from-ATT-Park.html)

사진2. 마리아노 리베라 (http://espn.go.com)

사진3. 미우라 카즈요시 (http://image.space.rakuten.co.jp)

사진4. 김기동 (http://cafe.daum.net/sodrkt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