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orts Paradox

보이지 않는 나와의 싸움, 심리전



제5화 보이지 않는 나와의 싸움, 심리전


사내 블로그를 통해 "김인범의 Sport Paradox"를 연재 중입니다

다섯 번째 글은 "보이지 않는 나와의 싸움, 심리전" 입니다.


흔히 스포츠는 '흐름의 경기'라고 합니다.

당당하게 기세를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수세에 몰리기도 하고, 그러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역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잡은 쪽은 어떻게든 점수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기회를 놓치면 우리를 유리하게 만들었던 좋은 분위기는 순식간에 양날의 검처럼 우리를 향해 덮쳐옵니다.

그래서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아무리 일방적으로 보이는 경기일지라도 각 팀(또는 선수)에게 2-3번의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한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예상된 결과 또는 이변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를 이끄는 것은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과 심리적인 강인함일 것입니다.

또 다른 사투, 심리전

경기장이나 TV로 스포츠 경기를 지켜보면 선수들은 끊임없는 육체의 움직임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쟁자와의 그리고 나 자신과의 멈추지 않는 심리전이 함께합니다. 선수들의 육체만큼 선수들의 두뇌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1800년대 중반에 시작된 근대 올림픽 시절에는 승부를 가르는 최대 요소는 육체적 강인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스포츠가 발전하면서 육체적 강인함은 많은 선수들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고 승부를 결정짓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심리전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가장 이상적인 태도와 행동이 나타나며, 그 결과 또한 괄목할 만합니다. 스포츠 역시 인간의 행위이므로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가 반영됩니다.

비겨도 되는 경기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매우 다르며, 이러한 마음가짐을 통해 발생하는 효과 역시 매우 다릅니다. 심리적으로 매우 쫓기는 상태와 반대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의 경기력은 선수들의 스트레스부터 체력까지 온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박태환 선수가 경기장에 등장하면서 계속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것이나, 김연아 선수가 경기 시작 전 담당 코치와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 것, 그리고 많은 선수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 역시 이러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사진1. 경기 전 박태환 선수의 준비 모습은 이제 많은 국민들에게 익숙한 장면입니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Steve Blass Syndrome)

스포츠 계에서 대표적인 심리학적 이상 현상은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입니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스티브 블래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증상입니다. 1960-70년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에이스투수로 명성을 떨치던 스티브 블래스는 1973년 갑자기 제구력을 잃어버리고 고전을 거듭하다 1974년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그 당시 신체적인 이상이 전혀 없었기에 모든 전문가들은 스트레스 등 기타 정신적 문제로 제구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판단하고 이후의 비슷한 증상에 대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원인불명으로 알려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1990년대 들어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릭 앤키엘(Rick Ankiel)[각주:1]이 같은 증상을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0 11승을 올리며 차세대 영건으로 불린 그는 그 해 포스트 시즌에서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인해 전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증상을 보입니다. 그 이후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투수 대신 타자로 전향하여 현재 활약 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던 건 나름의 추정되는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스티브 블래스의 경우 함께 팀을 이끌던 로베르토 클레멘테(Roberto Clemente Walker)[각주:2]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팀을 혼자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고, 릭 앤키엘 역시 포스트 시즌 첫 경기에 선발등판이라는 부담감으로 인해 자멸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제일 유력한 추측들입니다)

이렇듯 투수의 투구라는 것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그 방법을 체득하긴 하지만, 정신적인 안정감과 지속적인 마인드 컨트롤로 제구력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 또한 존재합니다.

사진2.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창시자인 스티브 블래스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들은 경기 등판 1-2일 전에는 보통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동료들 역시 굳이 애써 말을 섞으려 하지 않습니다. 등판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선수의 신경이 예민해져 스스로가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사진3.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인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야 했던 릭 앤키엘

종목별 심리전의 사례

이렇듯 심리적인 상태가 선수들의 컨디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종목별로 선수들은 상대의 컨디션을 흩뜨려 놓기 위해 심리적인 공격을 시도합니다. 야구, 농구, 축구 등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살펴볼 야구에서의 심리전은 바로 벤치 클리어링(bench clearing)[각주:3]입니다.

벤치 클리어링은 언뜻 보기에 화난 선수들간의 몸싸움으로 보여집니다.

보통 한 팀이 다른 팀의 선수에게 빈 볼을 던져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다른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벤치 클리어링은 가끔씩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몇 노련한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벤치 클리어링을 유발시킵니다. 축 쳐져 있던 선수들의 마음은 상대팀과의 격렬한 몸싸움으로 인해 다시 전투적으로 바뀌고, 벤치 클리어링 동안 다시 자신의 소속감을 확인하며 이러한 마인드의 변화는 곧 팀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모든 벤치 클리어링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의 소속팀 LA Dodgers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6월까지 최하위권에 쳐져 있던 LA Arizona와의 경기에서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을 겪은 뒤 선수들의 조직력이 살아나 현재 서부지구 2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렸습니다.

다소 산만했던 선수들은 지구 라이벌에 대한 적대감으로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렸고, 적어도 이 팀(Arizona)보다는 잘하자는 Team Spirit의 상승 효과까지 가져왔습니다.

사진4. 화제가 되었던 LA Dodgers와 Arizona DiamondBacks간의 벤치 클리어링

농구에서도 이러한 심리전이 존재합니다.

'Trash Talk' 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는 미국 NBA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경기 중에 선수간에 발생하는 다소 외설스럽거나 추한 욕설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상대 선수의 기를 죽이고, 이를 통해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여 보다 유리한 경기 진행을 하기 위함입니다.

경기 장면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이러한 Trash Talk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코트에서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 선수들간의 수많은 설전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가끔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올해 1월에 발표된 Top 10 Best Trash Talkers in NBA History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슈퍼스타들이 Trash Talk를 활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위

이름

소속팀(은퇴 선수의 경우 은퇴시점의 팀)

1

래리 버드

煎 보스턴 셀틱스

2

마이클 조던

시카고 불스

3

레지 밀러

煎 인디애나 페이서스

4

게리 페이튼

煎 시애틀 수퍼소닉스

5

케빈 가넷

브루클린 넷츠

6

찰스 바클리

煎 피닉스 선즈

7

코비 브라이언트

LA 레이커스

8

라시드 월러스

煎 뉴욕 닉스

9

샤킬 오닐

煎 보스턴 셀틱스

10

앨런 아이버슨

煎 필라델피아 세븐틱식서스

1. Top 10 Best Trash Talkers in NBA History (출처 :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1477821-kevin-garnett-and-the-top-10-best-trash-talkers-in-nba-history )

NBA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들이 다수 포진된 순위이며, 특히 놀라운 것은 팬들이 생각하는 대외적 이미지가 깨끗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팬들에게 보여지는 것과 선수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것이 다른 점이 이색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5. 얼핏 보면 슈퍼스타간의 만남, 다르게 보면 Trash Talker 2위와 7위의 만남. Trash Talker 고수들끼리는 과연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특히 NBA 역사에서 1,2위를 다투는 래리 버드(Larry Joe Bird)[각주:4]마이클 조던 Trash Talker 순위에서도 1,2위를 차지한 것은 꽤 재미있는 사실이며, 욕설이나 빈정거림 같은 심리전이 이들에게 또 다른 무기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순위를 차지한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득점력이 뛰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주로 자신을 수비하는 상대에게 거침없는 Trash Talk로 주위를 분산시킨 뒤 그 심리적 우위를 통해 보다 수월하게 공격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축구에도 Trash Talk가 존재할까요? 물론 존재합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심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은 거친 반칙입니다.

거친 반칙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행위이지만, 경기 분위기에 따라서는 상대 팀 전체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반칙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 누군가가 무리해서 거친 반칙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상대방(또는 상대방 팀)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거친 반칙을 당한 선수는 통증이 기억에 남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보다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상 선수가 재활 기간 동안 겪는 어려움은 외상 보다는 외상 때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심리적 외상[각주:5]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진6. EPL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악동 조이 바튼. 실제 사생활도 매우 거칠기로 소문 나 있습니다.

이렇듯 스포츠 종목 별로 나름의 특색 있는 심리전 방법이 존재하며(더 많은 방법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심리전을 통해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합니다.

심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의미

심리학은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순간의 실수가 계속 기억에 남아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어떤 이는 실패에 대한 압박 때문에 미리 겁먹어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다가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져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게 인간이며, 정말 사소한 계기를 통해 반전을 이루어내는 것 또한 인간입니다.

이제 규모가 커지는 스포츠 구단은 구단 전용 심리 상담사를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선수들의 긴장 완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에어로빅, 명상 등)

힐링(Healing)’ 이 사회적 키워드가 된 것도 어쩌면 이러한 심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결과라 생각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힐링 이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미 심리적으로 안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스포츠 경기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선수들이 겪는 기회와 어려움이 우리의 인생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그 과정 속에서 선수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통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Image Reference>

사진 1. 박태환 선수 http://blog.daum.net/ummagumm/6329571

사진 2. 스티브 블래스 선수 http://p.joongang.co.kr/kr/news.do?_method=webcontent&newsid=20120423N0035

사진 3. 릭 앤키엘 선수 http://mirror.enha.kr/wiki/%EB%A6%AD%20%EC%95%A4%ED%82%A4%EC%97%98

사진 4. 벤치 클리어링 http://danbis.net/m/post/view/id/13821

사진 5.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http://www.ukopia.com/ukoSports/?page_code=read&sid=22&sub=2-10&uid=128361

사진 6. 조이바튼 http://www.fifakorea.net/bbs/view.php?no=78116&id=fifanews


원문은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log.skcc.com/1342